“주체적 인간으로 성장하는 비밀”…고통에 대한 태도

체로키 인디언에게 전해 내려오는 우화가 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우화다.

체로키 인디언에게 전해 내려오는 우화가 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우화다.
할아버지: 우리에게는 두 마리 늑대가 산단다.
손자: 무슨 늑대인가요?
할아버지: 한 마리는 좋은 늑대이고 다른 한 마리는 악의 늑대란다. 좋은 늑대는 항상 정의와 선을 위해서 싸우고 있고, 환희, 평화, 사랑, 겸손, 친절, 관대함, 진실, 창의성을 사랑한단다. 다른 늑대는 분노, 시기, 질투, 탐욕, 오만, 죄의식, 열등감, 우월함, 자존심을 옹호한단다.
손자: 둘이 싸우면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할아버지: 네가 먹이를 많이 주는 늑대가 이긴단다.

 

wrtn 생성 AI

인디언 우화는 구전된 이야기로 끝났지만 최근에는 뇌과학이 발달해서 두 마리 늑대는 뇌의 작용이라는 것까지 밝혀졌다. 

좋은 늑대는 대뇌 전전두엽의 기능이고, 나쁜 늑대는 변연계의 편도체가 활성화되어 작동되는 상태이다. 편도체는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 두려움이 편도체를 키우는 밥이라면 분노, 시기, 질투, 탐욕, 오만, 죄의식, 열등감의 편도체의 반찬이다. 

편도체는 심리학에서 성인 아이로 비유되기도 한다. 전전두엽은 밥은 자신의 존재 목적이다. 존재 목적이 밥이라면 고양, 감사, 평화, 자유, 진실, 이성, 창의성이 전전두엽을 키우는 반찬이다. 두 마리 늑대의 힘으로 비유되는 뇌의 근력이란 뇌세포인 뉴런의 연결을 담당하는 시냅스가 활성화되고 발달한 정도를 의미한다. 

생존을 위해 먹고 살다 보면 한쪽만 먹이를 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편도체의 시냅스와 전전두엽의 시냅스가 같이 자란다. 결국 두 기능을 담당하는 시냅스의 힘겨루기에서 승자를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비등한 상태로 자란다. 

우리 안에서 이 두 힘이 비슷한 상태로 평평하게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변화도 불가능하다. 전전두엽이 미래를 위해 변화를 제안해서 이끌고 가면 변연계의 편도체가 나서서 같은 힘으로 뒷다리를 잡는다. 

변화에 성공한다는 것은 전전두엽이 편도체를 충분히 달래가며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울타리를 제공하고 드라이버 역할을 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전전두엽 근력만 발전된 사람은 조증에 시달리고, 편도체의 근육만 발달한 경우는 울증에 시달린다. 조증과 울증이 서로의 통제력을 잃고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경우는 조울증 환자가 된다.  

wrtn 생성 AI

전전두엽과 편도체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되기도 한다. 전전두엽은 동물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의 뇌에 고유한 기능이다. 인간이 가진, 윤리적 정서, 창의성, 이성적 판단, 선에 대한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에 대부분 후천적 학습과 각성 및 고난 사건에 의해서 성장한다. 

편도체는 하루하루 위험을 피하고 약한 것을 취해야 하는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동물 뇌의 기본이다. 성인으로 성장하기까지 전전두엽과 편도체와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대부분 싸움에서는 골리앗인 편도체가 다윗인 전전두엽을 제압한다.

인디언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전수해 주는 가르침을 다시 해석하면 편도체라는 늑대에 먹이를 주는 일을 멈추고 전전두엽의 늑대에게 더 먹이를 주라는 것이다.

다윗을 성공적으로 키우고 골리앗을 제압하는 근력은 우리가 고통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리고 이 고통을 해결하는 방식에 의해서 운명이 갈린다. 인간은 아무리 부모로부터 좋은 유전자 복권을 타고 태어났어도 자신에게 닥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해결되지 못한 문제는 고통이다. 편도체는 이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강조한다. 생존하려면 고통을 해결하기보다는 피하고 숨기라고 명령한다. 편도체는 이런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키운 늑대다. 

전전두엽은 고통의 근원을 파악해서 원인의 수준에서 해결해 보라고 제안한다. 전전두엽이 좋은 제안을 하기는 하지만 전전두엽이 근력을 가지는 것은 실제로 고통을 해결한 체험을 통해서다. 고통을 회피하기보다는 직시하고 원인의 수준에서 이해해서 근원적 솔루션을 도출하면 희열이 생기고 이 희열을 먹어야 전전두엽의 근력이 생긴다. 

전전두엽이 편도체를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근력을 얻으면 우리는 주체적 다윗으로 성장한다. 근력을 형성하지 못한 전전두엽은 꿈만 꾸는 어린이에 지나지 않는다. 

전전두엽은 열정(Passion)은 고통을 해결했을 때 얻은 희열이라고 가르친다. 고통을 주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얻은 희열은 마약이다. 성장과 성숙이란 고통을 주체적으로 해결해서 얻어낸 전전두엽의 근력이다. 

전전두엽의 성장을 은근히 방해하는 훼방꾼도 존재한다. 전전두엽의 사촌 격인 유전자 복권이 그것이다. 부모로부터 좋은 머리와 재능과 외모를 타고난 것이 유전자 복권인데 이런 복권 당첨금을 가진 대뇌는 머리를 굴려가며 이런 유전자 복권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고통스럽게 살지 말고 쉽게쉽게 살라고 유혹한다.  

주체적 인간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고통을 대하는 편도체 방식의 해석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성장은 고통을 회피하고 숨기고 마약으로 쉽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직시하고 원인의 수준에서 처방을 발견해 이것을 주체적으로 해결하는 사건에서 나오는 희열을 먹고 자란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직면하고 이것을 서로의 고통으로 인정하고 해결하려는 성향은 긍휼(Compassion)이다. 

긍휼은 Passion(열정)이 공유된 Com 상태다. 공유된 고통을 같이 해결했을 때 나오는 집단적 희열이 신바람이다. 공유된 고통이 없다면 신바람은 신기루일 뿐이다. 신바람은 집단적 고통을 직시하고 협업으로 해결한 사건이 만든 것이다. 

신바람은 아픔을 그냥 희열로 승화시킨 한풀이와는 다른 정서다. 대한민국을 지금까지 이 정도나마 키워온 원동력은 고통에 대한 아픔을 표현한 한을 실제로 해결해서 얻어낸 신바람이다. 공동의 고통이 전제되지 않은 한이나 신바람은 마약과 같다. 국뽕일 뿐이다.  

살아 있는 모든 유기체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서 살고 주도적으로 변화를 선도하는 과정에서 모두 고통을 느낀다. 이 고통이 살아 있음에 대한 증거이자 실존임을 망각하고 이 고통을 쉽게 해결하기 위해 과도하게 유전자 복권 당첨금만 끌어다 쓰거나 반창고를 붙이거나 진통제를 처방하는 방식으로는 우리를 성장시키는 내재적 에너지인 희열을 얻지 못한다.

열정이라는 말이 고통을 해결해서 얻은 희열이 아니라 고통 없이도 얻을 수 있는 희열이라고 잘못 해석되는 것이 문제를 키웠다. 고통없이 얻을 수 있는 희열은 마약이다. 고통 없이 희열을 얻게 한 것이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이 모든 것은 마약으로 전락한다. 

비밀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왜 매운맛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유에도 숨겨져 있다. 매운맛의 비밀은 통증이다. 매운 고추는 통증을 유발하고 이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뇌에서 통증을 해결하는 엔돌핀이 분비된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엔돌핀이 주는 희열 때문이다. 고통을 주체적으로 해결해 성장을 체험을 했을 때는 엔돌핀뿐 아니라 도파민, 세로토닌, 페닐에틸아민이 같이 분비된다. 신바람은 공동의 고통을 해결했을 때 이런 긍정적 호르몬의 분비와 전염효과를 집단으로 체험한 것이다.

답은 고통을 회피하기보다는 직면해서 주체적으로 해결을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킨 경우 전전두엽과 다윗으로 상징되는 좋은 늑대에게 좋은 호르몬을 분비시키는 것과 같다. 결국 고통에 대한 태도가 좋은 늑대를 키우는지 나쁜 늑대를 키우는지를 결정하는 분기점이다. 

고통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를 주체적 성숙한 인간으로 키울 것인지 나쁜 늑대의 아바타로 키울 것인지를 결정하는 열쇠다. 

고통 없이 온실에서 자란 장미에게는 엔돌핀, 도파민, 세로토닌이 협업해 만들어 낸 고유한 향기가 없다. 향그러운 꽃으로 피고 싶다면 고통을 직면하는 용기에서 시작해 보라. 온실 장미가 아닌 들장미의 인생을 택해보자.

 

 

 

 

윤정구 이화여대 교수